1. A ghost player, 2022, two channel video, 3’37”
2. Playground, 2022



작년 크리스마스의 빅 이슈는 단연 제임스 웹 망원경의 발사였다. 우주의 기원 탐구에 개발 목적을 두었다는데, 과연 인간이 그것을 알아내는 것이 가능할까? 심지어 잘하면 외계 생명체도 찾을 수 있다고도 한다. 더욱이 내가 보기에, 금으로 도금된 반사경은 과학적 이론을 모르더라도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다웠다. 인간이 만들어낸 과학적, 물질적인 힘을 지켜보면서, 마치 지구에서 인간이 보지 못하는 것은 없는 듯 느껴졌다. 이 땅에서 이미 모든 것을 보아버려서, 더 이상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조차에도 질려버려서, 그래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미지의 공간으로 우리의 고개를 쳐드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하늘에 떠있는 약 1만여대가 넘는 인공위성, 그리고 바다에 잠수하고 있는 수많은 망과 데이터들 덕분에 가끔 지구는 거대한 전자두뇌로 보인다. 대뇌 대신 위성궤도가, 뉴런 대신 주파수가 흐른다. 이들은 크기만큼이나 방대한 데이터 양과 처리 속도를 감당한다. 그것을 토대로 일반적인 시간 분류법인 ‘과거 위의 현재’를 뛰어넘어, 과거와 미래를 융합한 현재를 만들어내고 있다. ‘개인최적화’라는 단어는 내 흔적을 토대로 ‘오늘 밤에 흥미를 가질만한’ 것들을 계산하여 보여준다. 진중한 대화, 혹은 스몰토크 한마디 필요없이 받아볼 수 있는 ‘추천’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듯 보인다. 보이지 않는 그들은 내가 어떻게 숨쉬는지, 어떻게 흥분하는지, 어떻게 잠꼬대하는지를 알고 나에게 조언한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 노래, 삶의 방식을 알고 나에게 디지털 이웃을 소개해준다. 그들은 나를 데이터로 하나하나 빚어나간다.

그러나 언니의 생일을 기념해 본 슈퍼히어로 무비와 친구가 추천해준 프랑스 드라마는 나를 어떻게 대변할 수 있을까. 상사의 지시로 찾는 레퍼런스 이미지와 다음주 미용실에 가서 보여줄 헤어 사진을 고르는 내 시선은 온도가 다를까. 이런 물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나를 손바닥 안에 쥔듯이 내 취향과 선택을 가지고 논다. 내가 원하는 것과 그들이 원하는 것이 섞여, 물에 녹아버린 소금처럼 보이지 않게 용해되었다. 과거와 미래의 뒤엉킨 시간 속 ‘지금’을 빼앗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디지털 운명을 피할 수 있을것인가? - 피할 수는 있는가?) 

《A Ghost》는 생존의 방법론을 찾기 위해 다시 하늘의 텅 빈 곳으로 시선을 돌린다. 우주에 존재하는 외계 생명체는 드레이크 방정식에 따르면 최소 36개 이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들을 발견하려는 인류적 노력에도 우리는 어떠한 단서를 발견할 수 없었다. 이를 ‘페르미 역설’이라 하는데, 이에 따르면 외계 생명체들은 위험으로부터 살아남기위해 일부러 숨고 있다고 추정된다. 나 또한 ‘이상한 도망자’로서 개인을 제한하는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시도한다. 

‘A ghost player’는 감각을 타인에게 덧입힘으로써 도망치려는 시각 실험이다. 도망자는 게임에서 상대를 피하기 위한 수법인 드리블을 시도하고, 이 행위는 그의 온 몸에 붙어있는 약 60여개의 렌즈를 통해 기록된다. 철저하게 도망자의 외부를 캐스팅한 영상 조각들은 관람자가 그 내부로 들어갈 수 있게끔 제한된 형태로 전시된다.

영상 이미지 내부로 들어가 시각을 획득한 관람자는 사운드를 듣기 위해 라디오를 조정하며 특정 주파수를 찾아가야 하는데, 이는 도망자의 감각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장치로 작동한다. 몇 안되는 공인 주파수의 깔끔한 음악소리, 그리고 그 사이를 채우고 있는 우주의 노이즈들. 그 가운데 송출되고 있는 도망자의 소리가 포착되어 시각과 청각 모두 관람자에게 넘어간 순간, 도망자는 감각을 넘겨주고 맨몸으로 달아난다.

‘Playground’에서는 한 사람의 시점에서 포착한 장면이 회전하는 진열대에 360도로 전시된다. ‘대상이 거기에 있었음’을 증명하는 전통적인 사진의 소통 방식을 취하는 대신, 도망자는 투명 망토 같은 이미지를 통해 ‘무엇인가가 렌즈 뒤에 있었음’을 시사한다. 가운데가 텅 빈 채, 다른 공간의 이미지를 두르고 있는 전시장의 진열대는 프레임 외부에 있는 주체의 존재와 부재를 동시에 드러낸다. 그러나 관람자들이 이를 자유롭게 돌려보며 ‘다른 시공간’에 균열을 가하고, 점차 주체의 존재는 흐려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