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 Dot, 2023
When I was young, casually flipping through television channels on a set that only had terrestrial broadcasts, my fingers would often linger on channels 2 and 3, which showed the CCTV feed from the apartment playground. During the times I was watching, other children were also indoors, so the screens usually showed no one. However, my sister and I would play a game of spotting rare appearances, staring at the seemingly frozen images for minutes on end. Our meaningless game ended when the TV channels changed and the feed no longer appeared.
With the invention of smartphones, we gained an additional eye beyond the two we have on our bodies—a camera lens used similarly to our eyes. Although lenses existed before and were widely used, the primary role of smartphones was the 'simplification of devices or hurdles.' We no longer need to prepare devices for transitioning to the digital world, save files, or connect wires between different devices to move data. All those actions are now replaced by unlocking a smartphone with facial recognition and performing everything with a single touch.
The simplification of hurdles means that the 'device' we use has become more similar to the human body. We no longer need to connect wires to raise a hand! It operates freely according to the brain's desires or the perceived senses. Compared to previous devices, smartphones have become more akin to hand movements, and lenses have become more like eyes. But is it only I who now has this new eye?
Rob Horning says, “When we upload our data online, we are always subjected to becoming content... the self is a content farm.” Other individuals, as well as organizations like companies, religions, and nations, have begun to acquire their own new eyes. They now use these eyes to look at smaller and more numerous things. Like casting a net into a vast ocean hoping to catch something, they cast their gaze, catch prey, and gradually build up a fish farm.
I reflect on what I see in a day: Instagram, which I habitually check while having breakfast; YouTube, which I watch while traveling; and Google, where I search for things I’m not even curious about. I experience repeated divisions. In this situation where an ecosystem I don’t want is wriggling, I feel as blind as can be. It seems as if other people’s selves are parasitizing my own eyes.
I gradually forget what I find repugnant and indulge only in what makes me hungry. I turn off those who dislike me and inject only what makes me forget myself. Because of someone watching over me, I cannot see what I want to see. No, what do I truly want to see? (For now, I don’t even know what I am seeing.)
I watch the CCTV feed that is always on during my work as if it were a childhood game. Observing others’ private lives in a place where I believe no one is watching me. The following content is quite entertaining as an unpredictable real-time drama. While amusingly wondering if this might be what religious people call the gaze of God, my gaze meets that of one person exactly. He cannot see me. But he has seen me. I feel caught and quietly close the CCTV window. At the same time, I think of ways to drive away those who inhabit my eyes and steal my vision.
어릴 적 지상파 방송만 나오는 텔레비전 채널을 리모콘으로 무심히 돌리다가도,
아파트 놀이터의
CCTV를 볼 수 있는 2번과 3번 채널에 종종 손 끝이 머물렀다.
내가 있던 시간에는 다른 아이들도
모두 집 안에 있는 시간대여서 대부분의 화면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지만,
언니와 나는 드문드문
나타나는 사람을 발견하는 놀이를 하며 몇 분이고 정지된 것 같은 영상을 바라보았다.
우리의
무의미한 놀이는 텔레비전이 바뀌는 동시에 채널이 나오지 않음으로 끝이 났다.
스마트폰의 발명 이후 시대에서, 우리는 신체에 달린 두 눈 외의 하나의 눈을 추가로 가지게 되었다
- 카메라 렌즈를 두 눈과 비슷한 용도로 사용한다. 물론 이전에도 렌즈는 존재했었고, 두루
사용되던것이었지만
스마트폰의 가장 큰 역할은 ‘기기-혹은 허들-의 간소화’ 였다. 우리는 디지털
세상으로 넘어가기 위해 기기를 준비하고,
파일을 저장하며, 데이터를 옮기기 위해 또 다른기기에
선을 연결할 필요가 더이상은 없다.
그저 늘 손에 쥐고 있는 스마트폰을 얼굴인식으로
잠금해제하여 한 번의 터치만으로 그 모든 행위는 치환된다.
허들의 간소화가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사용하는 ‘기기’가 신체와 더 비슷해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손을 들기위해 선을 연결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뇌가 바라는 대로, 혹은 내현감각이 바라는 대로
자유자재로 구동된다.
이전의 기기에 비해 스마트폰은 조금 더 손놀림에 가까워 졌고, 렌즈는
안구와 비슷해졌다. 그러나, 새로운 눈을 가진 것은 과연 나 뿐인가?
롭 호닝은 ‘온라인으로 우리의 자료를 올릴 때, 우리는 언제나 콘텐츠가 될 취험에 처한다. ... 자아는 콘텐츠 농장이다.’라고
말한다.
타인들은 물론, 기업, 종교, 국가 등의 단체들도 각자 새로운 눈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제 그 눈으로 더 작고 더 많은 것들을 바라본다. 망망대해에 그물을 던져 무엇이라도 하나 건져
올리겠다는 마음처럼,
시선의 그물을 던지고, 먹잇감을 낚고, 그러다가 점점 양식장을
구축해나간다.
내가 하루에 보는 것들을 복기해본다. 아침을 먹으며 습관적으로 확인하는 인스타그램, 이동하며
보는 유튜브,
그다지 궁금하지 않은 것도 검색해보게 되는 구글창. 나는 분열에 분열에 분열을 거듭한다.
내가 원하지 않은 생태계가 꿈틀거리는 이 상황에서 나는
맹인과 다름없다. 다른 사람의 자아가 내 눈 속에 기생하는 듯하다.
나는 내가 역겨워 하는 것을 점점 잊고, 나를 허기지게 만드는 것만 탐닉한다.
나를 역겨워 하는 자들을 끄고, 나를 잊게 만드는 것만 주입한다.
나를 지켜보고 있는 누군가로 인해 나는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볼 수 없다.
아니, 진정으로 보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일단은 내가 무엇을 보는 지도 알 길이 없다.)
근무하며 늘 켜두는 cctv창을 어릴 적 놀이하던 것 마냥 지켜본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
곳에서(있다고 생각 조차 하지 않는다) 남들의 사생활을 지켜보는 것.
다음의 내용이 전혀
예측가지 않는 실시간 드라마로써 꽤나 재미있다.
종교인들이 말하는 신의 시선이란 어쩌면 이런
것일까라는 우스운 생각을 하던 도중, 한 명의 시선과 내 눈이 정확히 마주친다.
그는 나를 보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나를 보았다. 나는 들킨 기분이 들어 조용히 cctv 창을 닫는다.
동시에 내 눈에
기생하는 자, 내 눈을 훔친 자들을 내쫓을 방법을 떠올린다.
《Red dot: for hijacked eyes》 exhibition installation view, 2023, Pado space, Seoul
Blind voice call 5:58, 2023, 6”22’, Single channel video and sound
Retrograde, 2023, 6”00’, Two-Channel/Color Video
"Red Dot: For Hijacked Eyes" unfolds the process of someone who, having had their eyes stolen, ends up stealing others' eyes. The term "Pale Blue Dot*" is a monumental image that emphasizes Earth's fragility and uniqueness, encouraging coexistence and provoking cosmic thought. However, even in this narrative, individuals who were unaware of being photographed are romantically erased.
The term "Red Dot," a variation and targeting device of the "Pale Blue Dot," conjures up the "Data Body**"—a transparent target existing simultaneously within the vast pixelated universe of the internet. As a "Data Body," individuals cannot control their own physical selves, and hence, they do not even know what they are seeing. Their eyes, in the end, are stolen without their realization.
In the repetitive stagnation of being a 'blind person whose eyes can see,' the artist plans a method of survival for those whose eyes have been stolen through "face-to-face stealing," borrowing from the system’s cracks caused by the reversal of gaze. Analyzed and collected for the benefit of corporations, states, and other interests, the 'stolen eyes' are only able to see the images designed by those who have stolen them. The image world, obscured by hidden societal gazes and the invisibility of individuals who indulge in them, has been plunged into darkness. "Red Dot: For Hijacked Eyes" aims to depict this world through the reversal of gaze and to create opportunities to steal the 'hidden eyes' by generating erroneous images.
*The "Pale Blue Dot" is a photograph of Earth taken from space by Voyager 1 on February 14, 1990, after Carl Sagan persuaded NASA to capture it. Inspired by this photograph, Sagan later wrote "Pale Blue Dot" (1994).
**The "Data Body" is a concept referred to by the Critical Art Ensemble (CAE), meaning an individual's digital aggregate within cyberspace, constrained and operated by others' predictions.
《Red dot:도둑맞은 눈을 위하여》는 눈을 도둑맞은 자가 타인의 눈을 훔치는
과정을 전개한다.
‘Pale blue dot*’은 지구의 취약함과 유일성을 강조하며 공존을
장려하고 우주적 사고를 촉발시킨 기념비적인 이미지이다.
그러나 이 이미지의
서사에서도 ‘촬영되는지 몰랐던 개인’은 낭만적으로 삭제된다.
이러한 ‘Pale blue dot’의 변형이자 표적을 정확하게 조준하기 위한 장치를 뜻하는
‘Red dot’은
현대의 거대한 픽셀 우주 - 인터넷 속을 유영하는 동시에 투명한
표적물로서 존재하는 ‘데이터 바디**’를 소환한다.
‘데이터 바디’로서 개인은 자신의
본체를 제어할 수 없기에, 무엇을 보고있는지도 모른다.
이들의 눈은 결국
훔쳐지는 걸 알아차리지도 못한채 도둑맞는다.
‘눈이 보이는 맹인’으로서 반복되던 제자리 걸음 속, 작가는 시선의 역행에서
발생한 시스템의 균열을 차용하여
눈을 도둑맞은 자의 생존 방법으로써
‘마주보고-훔치기’를 계획한다. 기업, 국가 등의 이익을 위해 분석, 수집되어
‘도둑맞은 눈’은 그들이 설계한 이미지만을 보게된다. 은폐된 사회적 시선과
그것이 탐닉하는 개인의 비가시화로 인해 암전되어버린 이미지 세계.
《Red dot:도둑맞은 눈을 위하여》은 시선의 역전으로 이 세계를 그려내고,
오류난 이미지의 생성을 통해 ‘은폐된 눈’을 훔칠 틈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칼 세이건이 NASA를 설득해 1990년 2월 14일 보이저 1호가 우주에서 촬영한 지구
사진이다.
이후 이 사진에서 영감을 받은 그는 ‘창백한 푸른 점(1994)’를 집필했다.
**Critical Art Ensemble(CAE)이 지칭한 개념으로, 타인의 예측에 의해 제한되고 작동되는
사이버 공간 내 디지털 집합체로서의 개인을 의미한다.
《Red dot: for hijacked eyes》 exhibition installation view, 2023, Pado space, Seoul